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최고인민회의/역대 회의 (문단 편집) ==== 3기 1차 회의 ==== 1962년 10월 22일부터 23일까지 진행. * 최고인민회의 의장: [[최원택]]. * 최고인민회의 부의장: [[리기영]], 김득란.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최용건]].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부위원장: [[박정애]], [[홍명희]], [[강량욱]], [[백남운]], [[박금철]].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서기장: [[림춘추]].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 [[리효순]], [[하앙천]], [[현무광]], 박신덕, [[최현(북한)|최현]], [[리영호(1910)|리영호]], 김왈룡, 김옥순, [[로익명]], [[김창덕]], [[송영(1903)|송영]], 리만규, [[리면상]], [[계응상]], 리재복, 도유호. * 대의원자격심사위원회: * 위원장: 최용진. * 위원: 박웅걸, 한동백, 리재윤, 류기익, 추상수, 로영세. * 법제위원회: * 위원장: [[김익선]]. * 위원: [[허봉학]], [[김동규(북한)|김동규]], 최기철, 리재영, 김히준, [[로익명]], [[김국훈]], 김시중. * 예산위원회: * 위원장: [[림계철]]. * 위원: [[강희원]], 정성언, [[오제룡]], 리차선, 정종기, [[장윤필]], 리창복, 김무회, 박승흡, 주원생, 지장건, 윤련환, 전경화, 리석심. * 외교위원회: * 위원장: [[박용국(1921)|박용국]]. * 김왈룡, [[허석선]], 유건양, 정광록, 김옥순, 최학선. * 내각수상: 김일성. * 내각 제1부수상: 김일. * 내각 부수상: [[김광협]], [[김창만]], [[정일룡]], [[리종옥]], [[리주연]]. * 부수상 겸 국가건설위원장: [[남일]]. * 부수상 겸 전기석탄공업상: [[정일룡]]. * 부수상 겸 금속화학공업상: [[리종옥]]. * 부수상 겸 국가계획위원장: [[정준택]]. * 민족보위상: [[김창봉(북한)|김창봉]]. * 사회안전상: [[석산(북한)|석산]]. * 외무상: 박성철. * 국가과학기술위원장: 오동욱. * 경공업위원장: 박룡성. * 농업위원장: [[김만금]]. * 기계공업상: [[조동섭(1920)|조동섭]]. * 수산상: [[최용진]]. * 림업상: [[정동철(1909)|정동철]]. * 도시 및 산업건설상: [[김병식(1917)|김병식]]. * 농촌건설상: 김병익. * 교통상: [[김회일]]. * 체신상: [[박영순(1905)|박영순]]. * 재정상: [[한상두]]. * 상업상: 김세봉. * 수매량정상: 한대영. * 무역상: [[리일경]]. * 로동상: [[백선일(1925)|백선일]]. * 내무상: [[박문규]]. * 도시경영상: [[렴태준]]. * 고등교육상: 김종항. * 보통교육상: [[윤기복]]. * 문화상: 박웅걸. * 보건상: [[최창석(1916)|최창석]]. * 국가건설위원회 제1부위원장: [[김응상]]. * 평양시 인민위원장: [[강희원]]. * 과학원장: [[강영창]]. * 내각 제1사무국장: [[최재우(북한)|최재우]]. * 내각 제5사무국장: 오태봉. * 설비 및 물자총국장: 김양률. * 경공업총국장: 리량숙. * 최고재판소장: [[김익선]]. * 검사총장: [[박세창(북한)|박세창]]. >실로 [[1964년]]은 우리 인민의 생활 향상에서 새로운 거대한 전환의 해로 될 것입니다. 1964년에 우리는 300만 톤의 [[벼]]와 20만 톤의 [[육류]], 3억 메터의 [[섬유|직물]]을 생산하게 되며 그 해까지 [[도시]]와 [[농촌]]에 새로 건설되는 문화 주택은 60만 세대에 달하게 [[희망사항|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 인민은 모두가 다 [[기와집]]에서 [[쌀밥|이밥]]에 [[육수|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사는 부유한 생활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 나라 근로자들이 오랜 옛날부터 꿈꾸어 오던 념원을 우리 시대에 와서 실현하는 무한히 기쁘고 자랑스러운 일입니다.[* 당시에는 [[문화어]]가 제정되기 전이라 [[띄어쓰기]] 등 표기법이 지금의 [[문화어]]와는 달랐다. 의존 명사도 붙여 쓰는 지금의 문화어와는 달리 당시에는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조선 로동당 중앙 위원회''', '''최고 인민 회의''', '''조선 중앙 통신사''', '''김 일성 수상'''처럼 과도할 정도로 띄어쓰기를 많이 했다. 다만 당시에도 사이시옷은 인정하지 않았다. 그러나 발음은 동일하게 [이:바베 고기(ㄷ)꾹\]으로 한다.] >---- >"조선 민주주의 인민 공화국 정부의 당면 과업에 대하여", [[최고인민회의|최고 인민 회의]] 제3기 제1차 회의에서 한 [[김일성|김 일성]] 수상의 연설, 1962년 10월 23일[* "조선 중앙 년감 (1963년 판)", 조선중앙통신사, p. 29. 위의 인용문은 모두 1962년 당시의 북한 맞춤법을 그대로 옮겨 적었다.] 이 회의에서 그 유명한 김일성의 [[이밥에 고기국 기와집에서 비단옷]] 연설이 나왔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